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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 황혼의 스타들과 잊혀진 시간의 반짝임

by gilgreen62 2025. 6. 9.
목차

1. 잊혀 가는 배우들의 초상 — 리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의 ‘황혼’이 주는 감정

2. 타란티노의 할리우드에 대한 향수 — 시대의 끝을 기억하는 방식

3. 픽션이 된 역사 — 샤론 테이트와 시간의 ‘만약’을 뒤집는 영화적 상상력

 

 

 

1. 잊혀져 가는 배우들의 초상 - 리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의 ‘황혼’이 주는 감정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단지 화려한 영화산업의 배경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중심엔 두 명의 남자, 리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가 있다. 이들은 현실의 무게와 자기 존재의 소멸을 감지하며, 시대의 변곡점을 묵묵히 지나가는 인물들이다.

리릭은 한때 잘 나갔던 TV 서부극 스타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한물간 배우’로 낙인찍혀 가는 중이다. 그가 느끼는 불안은 현실 그 자체다. 세상이 자신 없이도 돌아간다는 자각,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배우들과의 비교 속에서 그는 자신이 사라질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이건 연예인뿐 아니라 누구나 나이 들며 경험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적인 두려움이다. 영화는 그 감정을 굉장히 리얼하게, 동시에 위트 있게 풀어낸다.

반면, 클리프 부스는 달랐다. 그는 리릭의 스턴트맨으로, 늘 조용하고 묵묵한 삶을 살아간다. 클리프는 자신이 빛날 수 없다는 걸 아예 받아들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후반부, 샤론 테이트 사건을 뒤집는 장면에서 클리프는 폭발적 에너지를 분출한다. 묵묵히 있던 그가, 누구보다 강력하게 중심을 잡는다.

이 두 인물은 ‘잊혀 가는 존재’들의 은유다. 한 명은 지워지는 걸 두려워하고, 다른 한 명은 이미 지워진 삶을 살아간다. 타란티노는 이 두 남자의 대비를 통해, 결국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지 않는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억될 순간'을, 찬란하게 그려낸다.

 

 

2. 타란티노의 할리우드에 대한 향수 - 시대의 끝을 기억하는 방식

1969년의 할리우드는 거대한 변화의 전환점이었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점점 쇠퇴하고, 젊은 작가주의 감독들이 등장하며 새로운 영화의 물결이 시작됐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바로 그 ‘전환 직전의 불안정한 균형’ 속 풍경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타란티노는 이 영화에서 노골적인 향수를 드러낸다. 카페의 사인, 영화관의 네온사인, 빈티지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이 영화는 한 편의 복고적 회상록이다. 하지만 이 향수는 단지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어떤 시대가 끝나가는 그 감각 자체를 기록하려는 시도다.

관객은 이 영화 속 뉴 할리우드를 경험하지 않는다. 오히려 구 할리우드의 잔향과 아름다움을 조용히 감상하게 된다. 이를 통해 타란티노는 ‘과거는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 숨 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그 안에 있던 감정과 감각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주목할 것은 여성 캐릭터인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의 묘사다. 타란티노는 그녀를 단순한 피해자의 상징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밝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일상 속에서 보여준다. 카페에서 웃으며 춤추고, 영화관에서 자신의 출연작을 보며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 시대의 빛’이자 ‘할리우드의 가능성’이다.

이 영화는 결국, 사라져가는 시대와 인물들에게 보내는 한 편의 시적 작별 인사다. 그리고 그 작별은 화려하지 않지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타란티노는 영화를 통해 그들을 다시 살려냈기 때문이다.

 

 

3. 픽션이 된 역사 - 샤론 테이트와 시간의 ‘만약’을 뒤집는 영화적 상상력

타란티노는 역사를 왜곡한 게 아니다. 그는 "역사를 다시 쓴다"는 영화적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한 감독이다. 버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히틀러의 최후를 바꿨듯, 이 영화에서도 그는 샤론 테이트 사건의 비극적 결말을 완전히 비틀어버린다.
이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모두 숨을 죽인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건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란티노는 예상과 전혀 다른 길로 간다. 그리고 그 선택은 감동적이다.

이건 단순한 ‘폭력적 판타지’가 아니다. 비극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대해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이라는 위로의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다. 타란티노는 피해자였던 그녀를 구해냄으로써, 비극을 대체할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한다. 그건 단지 영화 속 캐릭터의 구원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에게도 위로로 작용한다.

영화는 픽션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픽션은 무책임하거나 경솔하지 않다. 오히려 타란티노는 그 픽션을 통해 현실의 잔혹함을 간접적으로 비추고, 그 어둠에 빛을 비추려 한다. 클리프가 맨슨 가족을 무자비하게 응징하는 장면은, 현실에서 벌어졌던 고통에 대한 가상의 ‘정의’다. 그것은 상처 난 시대에 대한 영화적인 복권이며, 감독의 개인적인 ‘위로의 장면’이기도 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그래서 ‘동화’다. 해피엔딩을 향한 의지이자, 상실을 되돌리려는 간절함이다. 타란티노는 이 동화 속에서 할리우드를 다시 살려내고, 그 안에서 모든 인물들이 다시 웃을 수 있게 만든다. 관객은 그 웃음 속에서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현실은 바꿀 수 없지만, 영화는 가능하다는 믿음. 그것이 이 작품이 남긴 가장 따뜻한 한 줄이다.